원령공주 모모노케 히메 영화 리뷰

원령공주 모모노케 히메 영화 리뷰 - 1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인 모노노케 히메. 처음에는 거대한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것과 신비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봤는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보면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왜 사람들이 지브리를 찬양하고, 미야자키 하야오를 찬양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모모노케 히메 이야기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모노노케 히메라는 제목보다 아시타카의 여행, 모험 등이 제목으로 더 어울릴 것입니다. 아시타카가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주 내용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모노노케 히메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에는 지브리사의 사장이 미야자키 하야오 몰래 모노노케 히메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고 발표해버려서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이런 제목이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아시타카의 모험보다는 이런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킬테니까요. 저도 아시타카의 모험 같은 제목보다 원령공주라는 제목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비록 영화의 내용과 전체적으로 관련이 없다고해도 말이죠.

 아무튼 이러한 속사정을 보더라도, 영화의 내용이나 주제가 원령 공주인 ‘산’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아시타카가 저주를 풀기위해 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원령공주 모모노케 히메 영화 리뷰 - 2

그렇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아시타카의 모험을 통해 인간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있으니,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말아라. 자연을 파괴하면 큰 재앙이 닥칠꺼야라는 주제를 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령 공주의 주제가 자연을 파괴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땐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자연을 파괴하지 말라는 1차원적인 내용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모모노케 히메 속 갈등

영화 속에는 다양한 갈등이 존재합니다. 그 중 대표되는 것이 인간과 자연 간의 갈등이지만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 옛날 아시타카의 부족과 왕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부족이 변방으로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살짝 나오고, 타타라 마을의 에보시 영주와 다른 마을의 아사노 영주의 갈등도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간의 갈등, 일반인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간의 갈등도 등장하죠. 단순히 환경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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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타카가 마을을 떠나자마자 본 것이 인간과 인간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자연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그것이 ‘욕망의 절제’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여성 영주로 등장하는 에보시는 자신의 마을을 더욱 번영시키기 위해 숲을 없애고, 일본 정부와 협력합니다. 존재만 언급되는 왕은 불로불사를 탐하는 자로써 수하를 보내서 시시가미 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웃 영주인 아사노 영주 또한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에보시의 타타라 마을을 공격하는 자입니다.

영화 속 메시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욕망의 절제를 통해 서로를 인정하는 것. 틀림이 아니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타카는 영화가 끝나면서 산에게 ‘너는 숲에서’, ‘나는 타타라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자고 이야기 합니다.

결국 서로가 살아가는 공간이 다름을 인식하고, 이러한 다름 속에서 함께 살아가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보시 또한 기존의 마을과는 달리 더 좋은 마을을 세우자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은연중에 인정하고 더 좋은 마을을 건설할 것을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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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가미에게 머리를 돌려주는 것에서도 이러한 주제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머리를 돌려준다는 행위는 욕망을 절제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왕에게 시시가미의 머리를 진상하겠다는 욕망을 버림으로써 모든 재앙은 끝이나고, 황폐해진 공간에 새로운 생명들이 싹을 틔우게 됩니다.

영화는 작품 내내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던질 뿐이죠. 서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영화는 그 중 하나로써 ‘욕망의 절제’를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 상황을 보면서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들이니만큼 이에 대한 판단은 결국 관객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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