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 함께 광고와 마케팅을 이끈 켄 시걸이 말하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추방되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에 대해 실제로 겪었던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며 그의 행보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미친듯이 심플 / Insanely Simple
저자인 켄 시걸은 스티브 잡스와 함께 광고계의 혁명을 일으켰던 인물입니다. 애플의 광고 문구로 유명한 Think Different의 광고 캠페인을 기획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광고와 함께 애플은 화려하게 부활했죠.
미친듯이 심플은 켄 시걸이 봐 왔던 잡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잡스를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인물인 만큼, 잡스가 애플에서 추방되는 시련을 겪고, 다시 성공해서 금의환향했을 때 잡스에 대해 실제 겪었던 사례를 통해 잡스의 행보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잡스의 심플스틱
켄 시걸은 잡스가 그려낸 마법이 그가 들고 있던 '심플스틱'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심플스틱이라는 건,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풀어버리는 잡스의 마법이라고 합니다. 잡스가 심플스틱을 휘두를 때면 모든 문제가 쉽게 풀렸다고 말하며, 어떻게 심플스틱을 이용해 마술들을 부렸는지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면 점점 공감하기 힘들어지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극단적인 비교 대상
지금은 고인이 된 잡스지만 그가 대단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국내의 대기업들을 만들어낸 초대 회장들을 보면, 500원 지폐 속 '거북선'을 보여주며 차관을 유치하여 조선소를 건설했던 정주영 회장이나 마누라 자식 빼고 전부 바꾸라면서 불량 제품 15만대(시가 500억원 치)를 불태워버린 이건희 회장의 전설은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인텔이나 델의 행보를 잡스가 돌아온 이후의 애플과 계속해서 비교하는 건 잡스를 띄워주기 위해 극단적인 사례를 드는 것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2024년 현재 인텔이 휘청거리고 있긴 하지만 그건 애플과 반대로 복잡해서 그런 게 아니라 경쟁자가 없다고 생각해 기술 연구를 등한시하면서 AMD의 추격에 대처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입니다. 델은 완제품 PC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켄 시걸은 애플을 띄워주느라 그와 대비되는 기업이 죽어가거나 꽉 막힌 기업들로 묘사합니다.
심플스틱≠단순함
켄 시걸이라는 인물에게 뭐라 지적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읽다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켄 시걸은 잡스가 심플스틱을 휘둘렀다고 하는데, 잡스가 휘두른 것이 정말 단순하게 만드는 마술이었까? 하는 의문입니다.
실제로 아이폰과 같은 제품을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있나요? 생긴 건 단순하게 버튼 하나에 화면 하나. 이렇게 되어 있지만 그건 외형일 뿐 들어간 부품이나 기능들을 보면 단순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잡스가 휘두른 것은 단순함의 맙버이 아닌 집중의 마법이라고.
CEO란 비전을 갖고 그걸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나아가게 만드는 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휘청거리던 애플에 복귀한 잡스는 어떠한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시하고 거기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선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바다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식량이 떨어지는 일이 있어도 목표로 하는 섬까지 도달하도록 고집스레 나아감으로써 애플이 하나의 비전에 집중해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던 거죠.
실제로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세웠던 NEXT에서 만든 컴퓨터 또한 심플스틱의 마술이 들어갔다고 보기엔 어렵지 않을까요?
잡스가 단순함에 집착했기보다는 어느 것에 집중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했다고 생각합니다. 애플이라는 회사에서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과업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요.
생각 정리
그래서 제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잡스는 단순함에 집착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과 회사의 비전을 구체화하고 이를 따라오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리더쉽을 갖고 사람들을 이끄는 인물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정도가 다른 사람보다 강했기에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벗어나면 심하게 배척하고, 이런 모습이 타인에게는 괴팍한 모습으로 비쳐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단순함이란 말로 잡스를 모두 설명했다! 라는 건 옳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단순함에 대한 집착이라는 단어로 잡스를 정의하려 한 켄 시걸의 모습에 공감하지 못한 거 같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도 좋았던 점은 있습니다. 바로 잡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는 겁니다. 다른 이야기들을 보면 잡스의 비인간적인 모습만 심하게 부각시키는 경향이 큽니다. 하지만 이 책에선 괴팍하면서도 약간은 싸이코 같은 이미지의 잡스를 파트너로써 이해하고, 독자들에게 자신이 느낀 감정을 전해주려고 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