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긴 세계 3대 게임 크리에이터

 

세계 3대 게임 개발자들과

그들의 게임을 말하다.

RPG, AOS, RTS, FPS 등 우리가 플레이하는 다양한 장르의 비디오 게임들. 어떤 장르라도 처음은 있을 것이고,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게 한 위대한 게임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대한 게임들을 생각해냈던 게임 개발자들 또한 말이죠.

이번 포스팅에서는 비디오 게임 역사에 있어서 잊혀지지 않을 큰 족적을 남긴 게임 크리에이터들과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합니다. 올드 게이머들에게나 익숙한 이름이 있을 수도 있고, 들으면 아! 하고 떠오를만한 인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의 게임들을 즐길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게임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긴 세계 3대 게임 크리에이터 - 1

 

북미 RPG의 아버지, 로드 브리티쉬

리처드 개리엇   

세계 게임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 미국. 미국에서 탄생한 다양한 게임 장르들은 전 세계의 게임들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RPG(롤플레잉 게임, Role Playing Game)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제작되고 있는 게임 장르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리처드 개리엇은 이런 RPG의 기틀을 세운 인물들 중 한 명입니다. 그가 만든 게임들 중에는 최초로 상용화된 RPG인 아칼라베스가 있으며, 울티마 시리즈를 통해 RPG의 기초를 닦았으며, 그가 제작한 울티마 온라인은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으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온라인 게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흥미로운 별명이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자라는 타이틀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먹튀라는 아주 불명예스러운 별명이죠. 이런 두 가지 별명을 가진 리처드 개리엇.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19살 소년이 세계 최초의 RPG를 만들어내다!

리처드 개리엇은 1961년 7월 4일,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리처드가 태어난지 몇 달 되지 않아, 미국의 텍사스로 이민을 가게 되는데, 이 곳에서 리처드는 NASA 우주비행사와 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아버지, 오웬 개리엇을 보면서 우주 비행사로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게 되는데, 그 때부터 컴퓨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키보드나 마우스도 없었고,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서는 셀로판지에 점을 찍어서 디지털로 변환하는 방식의 막노동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학 기간 동안 30여 편의 게임이나 제작하는 열정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그를 호칭하는 별명인 '로드 브리티쉬'를 획득하게 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 전, 그는 한 컴퓨터 소매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게 됩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나의 게임을 제작하게 되는데, 그 게임이 바로 '아칼라베스(AKALBETH)'라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컴퓨터용 RP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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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 0'라고 불리기도 하는 아칼라베스

이 게임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컴퓨터 소매상에서 용돈벌이 삼아 팔았는데, 그를 눈여겨본 점장 덕분에 입소문을 타게 되었고, 결국 대형 소프트웨어 유통사인 캘리포니아 퍼시픽의 귀에 들어가서 퍼블리싱 계약을 맺게 됩니다. 이후 북미 전역에 유통된 아칼라베스는 3만 장의 판매량을 달성했고, 리처드는 15만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1억 7천)라는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됩니다. 비싸기로 소문난 미국의 대학 학비를 게임 하나로 모두 벌어들인 것이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울티마의 아버지 로드 브리티쉬

아칼라베스의 성공은 그에게 돈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안겨주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는다는 사실은 그를 고무시켰고,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의 길로 걸어서겠다는 결심을 하게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만들어낸 것이 바로 울티마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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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 시리즈는 9까지 나오게 되었으며, 현재 RPG의 틀을 잡아놓은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권선징악의 스토리에서 철학과 깊이를 녹여내었으며, 현재의 파티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 아바타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시리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울티마 시리즈는 6까지는 큰 흥행을 했지만, 이후 시리즈에서는 여러 가지로 인해 참패를 면치 못했는데, 그 와중에 온라인 게임 역사에 큰 획을 긋는 게임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바로 울티마 온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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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 온라인은 하나의 가상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었던 게임이며 세계 최초로 MMORPG라는 단어를 사용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리처드 개리엇이 게임 속에서 추구했던 것은 무한한 자유였습니다. 게임 내에 집을 짓거나, 운영자를 죽이는 행위 등 모든 것이 자유로웠죠. 실제로 한 유저가 PK 시스템을 악용하여 운영자를 죽였는데, 이를 들은 리처드가 유저를 제제하기는 커녕 극찬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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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할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울티마 온라인에서도 로드 브리티쉬는 구현되었는데,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싱글 플레이에서는 무적으로만 여겨졌던 이 캐릭터가 울티마 온라인에서 레인즈라는 유저가 펼친 파이어 필드에 사망하게 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에 완전히 분노해버린 리처드 개리엇은 친히 게임 속에 강림하여 마우스 클릭 신공으로 최강최악의 몬스터, 데몬을 마구잡이로 소환하여 당시의 테스터들을 모두 죽이고 가상 세계를 파괴해버립니다. 덤으로 로드 브리티쉬를 죽인 레인즈라는 유저는 계정이 완전히 차단되어 접속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죠.

테스트 기간동안 일어났던 이 '로드 브리티쉬 암살 사건'은 리처드에게는 화가나는 일이었겠지만, 유저들은 이를 전해듣고 울티마 온라인의 무한한 자유도에 환호성을 내질렀다고 하니, 정말 웃긴 이야기입니다.

우주먹튀, 리처드 개리엇

2001년, 리처드 개리엇은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이후 타뷸라 라사라는 게임을 만들게 되는데, 천억 원이나 들인 대작이었죠. 그러나 게임은 아주 거하게 말아먹고 엔씨소프트는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가 망하거나 말거나, 2008년 말 그는 엔씨소프트를 퇴직하며 우주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죠.

리처드 개리엇 개인적으로는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만, 퇴사 전부터 타뷸라 라사를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우주 여행에 필요한 훈련을 받아오던 모습과, 퇴사 후에는 엔씨의 주식을 팔아 200억 원 대의 이득을 취하면서 스톡옵션 관련 소송을 걸어 300억 원 대의 주식을 추가적으로 챙기고 우주로 떠나버리는 그의 모습은 국내 유저들에게 안좋게만 보였고, 결국 우주 먹튀라는 불명예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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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리처드 개리엇

국내 유저들이 그에게 지어준 '우주먹튀'라는 별명은 로드 브리티쉬, 세계 3대 개발자라는 호칭에 비해 굉장히 불명예스러운 이 별명은 이렇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단, 타뷸라 라사는 리처드 개리엇 자신의 실패가 아닌 엔씨소프트와의 의견차이로 인해 애매한 결과물이 나왔기에 실패했다는 관계자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사람들에게 어느정도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즉, 우주먹튀는 한국 사람들에게서만 통용되는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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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

시드 마이어

1989년,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왔던 질문에 대한 답.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a game is a series of interesting choices). 이 대답은 시드 마이어가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철학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역사와 보드 게임을 좋아했던 이 소년은 자라서 다양한 게임들을 개발하게 되고, 자신이 어렸을 적 가졌던 꿈을 그대로 옮기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게임은 전 세계의 게임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위대한 게임이 됩니다. 악마의 게임, 문명을 개발해 낸 사람, 시드 마이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시드 마이어와 게임

그가 갖고 있는 타이틀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게임 타이틀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최초의 게임 개발자, 가장 많은 공식적인 상을 받은 게임 개발자,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자 등.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문명이라는 위대한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30대의 시드 마이어는 마이크로 프로즈라는 회사를 공동창업하여 군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고 있었으나 다른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갈망에 허덕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해적. 게임에 대한 품질 보증의 일종으로 그의 이름을 붙여 '시드 마이어의 해적'으로 출시하게 되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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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로드 타이쿤. 타이쿤 장르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서 군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던 그는 윌 라이트의 심시티를 보게 되고, 큰 영감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해서 만들어낸 것이 '레일로드 타이쿤'. 현재의 경영 시뮬레이션과 타이쿤 장르를 만들어 낸 게임입니다. 이 또한 성공하였고, 시드 마이어는 바로 다음 게임을 준비하는데, 바로 자신의 어렸을 적에 관심을 가졌던 주제들을 모두 담을 게임을 구상하게 됩니다.

'역사, 문화, 사회 등' 다양한 키워드가 그의 머릿 속을 지나쳐갔으나 이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었던 키워드는 바로 '문명'. 인간의 모든 것이 담겨져있는 게임을 만들자. 그리하여 문명이 제작되었습니다.

시드 마이어와 문명

그는 탐험, 확장, 개척, 점령이라는 4개의 키워드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다양한 문명들이 발전하고 경제, 군사, 외교, 사회가 구현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게임을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991년, 문명이라는 악마의 게임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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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들어 낸 문명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는데, 기존의 게임처럼 무언가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 그 자체를 게임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최대한 인간의 역사와 철학을 게임 안에서 반영하려고 했던 노력의 결실은 성공적이었고, 600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세우게 됩니다.

패왕 간디 탄생하다.

물론 사람이 만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었습니다. 게임 속에는 예상치 못한 버그가 있었는데, 바로 문명5 시절에 큰 이슈가 되었던 패왕 간디의 모습이 버그로 인해 문명1에서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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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 인도의 왕이자 지도자로서 인사드리옵니다. 우리는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으니 허튼 수작 마시오." - 문명 1 플레이 中

간디는 실제 역사를 반영한 게임 답게 공격도 스탯(1~255 사이)을 최하인 1을 갖고 있는 군주입니다. 문명 속에서는 지도자가 민주주의 정부를 도입하게 되면 공격도가 -2가 감소하게 되는데, 간디의 경우 0이나 -1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255라는 존재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도를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후속작에서는 이 문제가 발견되었고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스터에그로써 남겨두었고 간디는 최강의 군주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문명하셨습니다.

문명5가 나왔을 때 게임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알았던 말인 "문명하셨습니다." 단순한 게임이었다면 그런 말을 통해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최고로 인기 있는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가 그런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던가요?

문명이 일반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특징은 인간 역사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깊이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필자에게 있어서도 문명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PC로 옮겨놓은 위대한 게임입니다.

시드 마이어는 지금도 파이락시스 게임즈에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14년도에는 비욘드 어스가 나왔고, 현재는 시드 마이어의 스타쉽을 개발 중에 있습니다. 기존 인간의 문명을 넘어선 미래를 향한 시드 마이어의 도전. 문명 시리즈에 이은 위대한 명작을 만들어주길 또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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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 4에서 피라미드가 지어지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사람은 비단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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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게임의 창시자

피터 몰리뉴

신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피터 몰리뉴는 게임을 통해 인간을 신의 위치에 있게 해준 사람입니다. 그는 파퓰러스라는 게임을 통해 갓 게임이라는 장르를 창시해냈고, 실시간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를 만들어내는 것에도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게임은 게임 산업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죠. 비록 허풍쟁이 등의 오욕을 뒤집어 쓰기도 했지만, 그가 이룩해낸 결과물들은 분명 놀라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파퓰러스, 장르를 만들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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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들어낸 게임인 파퓰러스는 선한 신의 은총을 받는 인간들이 악한 신의 은총을 받는 인간들과 싸워 이기는 게임입니다. 게이머는 선한 신이 되어 건물을 건설하고 주변 환경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직접적으로 인간을 조종하지는 않지만, 인간들은 AI를 갖고 있어 신의 의지에 따라 번성하거나 멸망하기도 합니다. 또한 당시 턴제 게임들으로 진행되었던 게임들과는 달리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이뤄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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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신 또한 자신을 믿는 인간들을 이끌게 되는데, 시간이 흐르면 선한 신(플레이어)의 지역을 자연스럽게 침략하게 됩니다. 이러한 매커니즘 때문에 최초의 실시간 전투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또한 이후에 나왔던 C&C, 워크래프트, 듄 2, 스타크래프트 등의 RTS 장르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시간 전투 전략 시뮬레이션으로는 최초이며 파퓰러스에 사용된 인터페이스 방식은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다고 할 정도니까요. (스카이 뷰 등)

또한 파퓰러스의 인터페이스를 따와서 만들었던 게임인 테마 파크는 타이쿤 장르의 시초가 되었으며, 이 때 사용된 인터페이스를 이후의 타이쿤 게임들에서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던전키퍼, 상식을 뒤엎다

그가 EA와 협력하여 만들어 낸 던전키퍼는 기존의 권선징악의 게임에서 궤를 달리한 게임이었습니다. 던전을 지배하는 악마가 되어서 각종 함정을 설치하고, 몬스터들을 고용해서 용사들을 물리치는 권악징선의 게임이라는 것이죠. 3년 간의 개발 끝에 출시한 던전 키퍼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게임성으로 전세계적으로 흥행하게 되었고, 던전 관리와 침입자 격파라는 컨셉은 이후 다양한 디펜스 게임을 통해 사용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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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던전 키퍼를 제작하는 방식은 피터 몰리뉴와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20명 이내의 소규모 인력이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비전을 공유하고 진행하는 방식을 선호했는데, 던전 키퍼는 100명 이상의 대규모 인력이 들어갔고, 돈을 위해서 정해진 일만을 처리하는 사람들 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회사를 나오고 라이언 헤드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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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만든 블랙 앤 화이트는 갓 게임의 새로운 지표를 열었는데, 바로 파퓰러스처럼 신이 되어 인간들을 지배하고, 자신의 권속인 크리처들을 이용한 다양한 조작들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크리처들은 신(플레이어)의 행위에 따라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했으니, 그가 원했던 게임이었던 것입니다.

기대가 독이 되어 돌아오다, 페이블

블랙 앤 화이트의 성공 이후에도 다양한 게임을 내놓았던 피터 몰리뉴. 그러나 그에게 큰 명성은 독이 되어 돌아왔는데, 언론에 노출하는 것을 좋아하는 피터 몰리뉴는 언론을 통해서 최고의 자유도를 이야기하며 유저들에게 많은 기대를 심어주었으나 실제로 나왔던 게임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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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들어 낸 페이블 또한 재미있는 게임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가 열심히 끌어올려낸 기대치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언론을 통해서 말했던 대부분이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유저들을 엄청난 실망을 하였고, 그에 대한 평가는 악화일로를 걷고, 허풍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심지어 페이블2가 나왔을 때는 유저들의 항의로 인해 그가 직접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걸어놓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페이블2는 30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의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의 기대치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음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화일로를 걷던 피터 몰리뉴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바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영국 제국 훈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게임을 미래의 전략 산업으로 생각하고 육성하고 있는데, 피터 몰리뉴는 영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게임 개발자로써 개발 뿐만 아니라 앞으로 게임 개발자가 나아갈 길에 대해 많은 고민과 동시에 후학들을 위한 강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훈장을 수여하기에 매우 적합한 상대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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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을 받은 직후 피터 몰리뉴는 페이블 시리즈에 대한 혹독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3번째 시리즈인 페이블 3를 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페이블 3는 전작들이 갖고 있었던 악평들을 모두 해소해버릴 만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선과 악의 선택은 물론, 성별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혼까지 가능한 자유도를 갖춰서 출시한 이 게임은 결국 35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게 됩니다. (시리즈 총합 1,000만 장 이상의 판매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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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더스로 돌아온 피터 몰리뉴

페이블 이후 피터 몰리뉴는 다양한 게임들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허풍쟁이라는 비판 여론이 형성 된 이후에 그의 새로운 시도는 여론의 공격으로 빛을 잃게 됩니다.

22cans는 과거 파퓰러스부터 페이블까지 호흡을 맞춰온 개발자들이 세운 소규모 개발사로, 피터 몰리뉴가 추구해왔던 마음이 통하는 소규모의 정예 베테랑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피터 몰리뉴는 2012년 말 가더스(Godus)라는 게임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공개하였습니다. 가더스는 주인공이 신이 되어 각종 지형 지물, 건물들을 조작, 건설할 수 있는 게임으로 심시티 빌드잇과 마찬가지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게임입니다.

가장 활동적인 1세대 게임 개발자로, 나이가 들어도 그의 열정은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열정이 보답받기를 바라며 이만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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