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맨을 동영상에서 만나다
인사이드 아웃에 이어서 픽셀까지. 이번에는 영화를 평소보다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영화 픽셀은 예고편을 본 순간부터 계속해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요, 어렸을 적 추억의 팩맨을 영화 속에서 만날 수가 있다니. 과연 내용은 어떻게 전개될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8비트 게임들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게임이 현실에 침공한다는 픽셀의 기막힌 상상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물론 좋은 설정을 형편없는 시나리오로 망쳐버리고 말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뒷심이 부족한 영화는 퍼시픽 림 이후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요.
고전 게임의 추억 속으로
2030세대의 어렸을 때라면, 어렸을 적에 동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문방구 앞에서 메탈슬러그 등을 즐겨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예전, 컴퓨터가 막 대중에게 보급되던 시절에나 유행했던 게임들. 제 기억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고전 게임은 바로 '돌아온 너구리'였습니다. 너구리가 뾱뾱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직도 제 기억 속에 남아있죠. 특유의 전자음들과 함께요.
그러나 너구리 말고도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게임들이 있습니다. 갤러그나 팩맨, 돈킹콩 등의 게임들은 한국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게임일 것입니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게임 캐릭터들 (어떤 게임인지 보기만해도 아실 듯)
이런 추억의 게임들이 현실을 침공한다는 스토리의 영화가 나왔으니, 어찌 아니 볼 수 있겠는가. 포스터에 나오는 팩맨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설레면서 영화관에 입장했습니다.
외계인들은 게임 캐릭터? 우리를 이해시켜줘.
초반부에는 주인공인 셈 브레너의 어렸을 적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래도 고전 게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야지 영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지, 아케이드 게임에 대해 주인공의 눈으로 보여주더군요. 대략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게임 천재였던 '샘 브레너'는 1983년 게임 대회에 나가서 2등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찍은 영상을 지구의 문화 중 하나로 소개하면서 NASA에서 외계로 쏘아 올렸고, 그 영상을 보게 된 외계인이 게임 캐릭터를 이용하여 지구를 침공하면서 이야기가 본격 전개됩니다.
왜 그들이 게임 캐릭터로 지구를 침공했어야 하며, 왜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하는 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고 게임 캐릭터로 침공하는 이유도 살짝 언급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갤러그부터 시작해서 지네, 팩맨의 습격을 차례대로 버티는데 습격->휴식의 패턴을 반복하니까 전개 상으로도 지루한 감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대놓고 코미디임을 피력하고 있는데, 미국 식 개그들도 웃긴 것들도 있지만 정말 재미없는 부분들도 많아서 몰입을 떨어뜨리기도 했고요. 미국의 대통령이나 휘하 사람들을 깎아 내리는 것은 풍자로 볼 수 있겠지만, 영국 수상을 이해할 수 없는 멍청이로 표현하는 개그는 무엇인지 이해가…
너드가 세상을 구하는 건 좋은데… 지치네요.
영화 속에서는 너드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너드는 우리 나라의 폐인, 게임덕후와 같은 것으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공한 너드도 있겠지만, 대다수가 그저 폐인이기 때문에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죠. 주인공인 샘 브레너도 이런 너드 중 한 명으로 가전 기기를 설치해주면서 살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인생에서 성공한 모습은 아니죠. 아내와도 이혼했다는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이지만, 그의 특기를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바로 게임 캐릭터들이 지구 침략을 시작한 것!
▲ 이제 내 시간이군!
사실 게임을 잘한다고 현실에서도 게임 같이 움직이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이 정도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생각하면 용서해줄 수 있습니다. 게임 캐릭터를 너드가 시원시원하게 물리치는 것을 보고 즐겁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가장 아쉬웠던 것은 원패턴의 진행 방식이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고전 게임의 단순한 패턴과 단순한 공략법과 같이 영화도 점점 지루해지게 됩니다.
특히 고전 게임 속 캐릭터들을 만나기 위해 영화를 관람하러 왔던 제 입장에서 잠깐의 전투 후 의미 없는 개그 수십 차례, 다시 잠깐의 전투는 보는 사람을 지치게만 만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테트리스가 벽을 매꿔서 건물을 부순다던가 등의 요소를 활용해서 영화를 재미있게 할 기회가 그렇게 많음에도 대표적인 팩맨, 돈킹콩, 지네 3가지만 놓고 게임을 재미없게 끌고가는 것은 엄연히 시나리오가 엉망이기 때문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더군요.
마리오가 세상을 구하다. 그런데...
돈킹콩에 나왔던 아저씨는 나중에 마리오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마리오라는 최하위계층의 인물이 공주를 구하듯이 샘 브레너라는 너드가 세상을 구하게 되죠. 그러나 그 과정까지 이르는 길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재미없는 아메리칸 조크와 왜 존재하지도 못하는 애정라인, 진부한 원 패턴, 팍스 아메리카나의 진부한 설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되더군요. 중간에 '겨울왕국의 올라프'와 같은 감초 역할을 하는 '큐버트'가 잠시 나와줘서 분위기를 환기시켜줘서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영화 초반에는 인사이드 아웃을 볼 때처럼 추억에 빠져들긴 했지만, 끝나고 나니 남은 건 허탈함 뿐입니다. 도대체 그 긴 시간동안 무엇을 위해 이 영화를 봤던 것일까... 차라리 원작인 단편 '픽셀'을 한 번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2분짜리 단편보다 재미없게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