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오센티미터 리뷰
지난 8월엔 <언어의 정원>이라는 신작이 나왔지만 보진 않았다. 초속 5cm도 원래는 볼 생각이 없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보게 되었다. 작품 자체는 괜찮은데, 보고나면 가슴 한 편이 답답해지는 것이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왕 보게 된 것, 블로그에 리뷰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카이 마코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빛의 마술사라고 불릴 정도로 빛의 활용을 기가막히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초속 5cm에서도 빛을 활용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이렇게 빛을 잘 활용하게 된 것은 그가 1인 제작 체제를 고수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혼자서 만들다보니 많은 장면들을 그릴 수 없었고, 정지 된 씬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 빛의 사용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장편을 만들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여, 작품들이 단편들로 되어있다는 점을 뽑을 수 있다. 그가 만든 최초의 장편을 초속 5cm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의 단편들이 인기를 얻자 그에게 투자 제안을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연작 애니메이션
초속 5cm의 특징이라면 세 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연작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1화 <벚꽃 무리>, 2화 <우주 비행사>, 3화 <초속 오센티미터>가 합쳐져서 초속 5cm이라는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이루고 있다. 벚꽃 무리에서는 타카키와 아카리의 사랑 이야기, 우주 비행사는 타카키를 짝사랑하는 소녀 카나에의 이야기, 3화에서는 1화로부터 10년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작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에 따라 하나의 단편으로써 이 작품을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세 작품을 하나로 묶어서 볼 수도 있다. 자신이 어떻게 보겠느냐에 따라서 여러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벚꽃 무리
토오노 타카키와 시노하라 아카리는 초등학교 4학년, 봄에 처음으로 만난다. 둘 다 부모님의 전근이 많아 전학을 계속하고 있었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의 사이는 가까워졌고, 친밀감은 계속해서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카리가 부모님을 따라 토치키로 전학을 가게 된다. 둘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편지를 통해 서로의 유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둘은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지만, 이윽고 타카키도 부모님을 따라 학기가 끝나면 섬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 전학을 가게된다면 다시는 아카리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타카키는 전차를 타고 아카리를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아카리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 심한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고 전차는 계속해서 연착하게 된다. 결국 서로 만나기로 했던 시간이 한참지나서야 약속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전차 속에서 타카키는 아카리가 그만 기다리고 돌아가기를 바랬지만 아카리는 계속 기다렸고, 둘은 결국 만나게 된다. 밤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둘은 헛간에서 잠들었고, 나중에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헤어지게 된다.
우주 비행사
우주 비행사의 이야기는 다네가 섬에 전학온 타카키를 짝사랑하는 스미다 카나에의 이야기다. 그녀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카나에가 타카키를 관찰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카나에는 타카키를 좋아하지만 타카키는 항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한 생각이 타카키에 대한 고백을 주저하게 되지만, 서핑 보드를 완벽하게 타게 된 것을 기점으로 타카키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고백하기로 결심한 날, 타카키는 여전히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고 자신은 그런 타카키에게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을 하지 않게 된다.
초속 오센티미터
타카키와 아카리가 벚꽃 아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채 헤어진 뒤 10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가 <초속 오센티미터>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10년 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볼 수 있다. 3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한데, 타카키와 아카리가 교차로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에 대한 각자의 해석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모습을 비춰준 뒤 나오는 음악과 함께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둘의 연락이 어째서 끊기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초속 5cm
이 애니메이션을 계속해서 보다보면 서로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게 된다. 그것이 벚꽃 무리에서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5cm라는 이야기와, 우주 비행사에서는 하늘로 발사되는 우주 비행선의 속도는 시속 5만 km, 마지막 초속 오센티미터에서는 타카키의 전 여자친구였던 나오노가 "우리는 그동안 1000번 이상의 문자를 했지만, 마음의 거리는 단 1센티미터 밖에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하는데서 드러난다.
위에서 말했듯이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에서도 대표되는 의견이 있으니 바로 '아카리 썅년'이라는 말이다. 타카키가 아카리를 그리워하듯이 아카리도 타카키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아카리는 결국 타카키와는 달리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유부녀가 된다. 그런점 때문에 아카리를 곱지 않게 보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아카리라는 인물이 더 현실적이지 않는가.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사랑 한 번 쯤은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첫사랑을 달리 첫사랑이라고 말하는가. 실패로 끝나기에 '처음'이라는 말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첫사랑이라는 것은 애틋하고 그리운 것이다. 그리고 각자 가슴 속에 추억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타카키는 13살, 그녀와의 추억에 계속해서 붙잡혀 있다. 이 점은 2화 <우주 비행사>편에서 카나에가 타카키를 관찰하는 장면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는 항상 수신자 없는 문자를 계속해서 쓰고 있으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아카리는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리워하지만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것이 둘의 차이점이다. 타카키가 과거에 붙들려있는 동안, 아카리는 계속해서 앞을 나아간다. 그들의 거리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초속 5cm에서 타카키와 카나에는 우연히 마주친다. 그리고 타카키는 말한다. "만약 지금 뒤돌아본다면, 저 사람도 틀림없이 뒤돌아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뒤돌아봤을 때 전차가 지나가고, 지나간 후에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마 그녀도 뒤돌아봤을 것이다. 그러나 전차가 지나가는 동안 다시 제 갈길을 갔을 것이다. 그것이 각자의 차이이며, 그와 그녀의 거리이다. 그는 돌아보고 있지만 그녀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
그녀가 사라지고 없는 것을 본 타카키는 씁쓸한 미소를 띄우며 다시 제 갈길을 간다. 이것을 통해 비로소 타카키도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